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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월 23일 송탄 자유독서 모임 후기
토요일 오후 진행된 자유독서에서는 두 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!
거리가 먼데도 참여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.
오늘 모임의 토론은 책과는 별개로 자존감이 키워드가 되었습니다.
자존감의 유행은 사실 조금 지났다고 보는데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.
자존감이 세상에 떠오른 건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부터 인 것 같아요
누군가의 성격이나 독립심을 인정하고 ‘그런 사람’임을 알게 되면서 부터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럼 나는 뭐지? 하는 자각이 자존감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
또 인간은 너무나 다양한 상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.
이러한 감정과 저러한 이성을 동시에 띄고 있고 그게 개성이 되어 ‘나’라는 사람의 성격이 되기도 하죠
그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거고
지금은 더 세밀한 분류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.
오늘 참여하신 분들도 자기 자신에 관심이 많고 개발을 하려는 의욕이 높아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.
자기 자신은 아직 개척되고 발견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.
오늘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왜 사회의 기준에 흔들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
착실하게 12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20살에 대학에 가고
20대 중반이 되면 진학을 하거나 취업 전선에 들어섭니다.
지옥같은 취준을 하고 나면 ‘알고보니 더 지옥같은’ 회사 생활이 기다리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되면 결혼이나 출산, 양육이라는 단계가 있죠.
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생기고는있지만 아직은 필수라고 보는 시선들도 있는 것 같아요.
예를 들면 그 ‘필수라는 시선’이 사회의 기준 같아요.
남들은 그 나이에 다 취직을 했는데 넌 뭐 해?
너는 전공 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? 왜 여기 왔어?
하는 걱정을 빙자한 참견이 해당 단계에 진입하지 못 한 사람들을 위축시킵니다.
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걸 만들어서 그 절차를 밟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걸까요.
이 단계에 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고 나도 참여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걸 벗어나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요?
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그 시간들이 쉽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때 힘든 기억을 잊어버렸는지 너무 가볍게 ‘이상하다’고 결정지어버려요.
그 말들이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위축되는 건지 모르겠어요.
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기서 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더 위축시키는 것 같아요.
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대단한 거고 난 낮으니까 그렇지 않다고 이분법적으로 보기도 해요.
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왜 그게 안 보이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걸까요.
저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
그냥 이거 자체를 인정해버렸습니다.
내성적이라고 해서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고 외향적이라고 해서 소심함이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.
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에는 상황에 따라 나의 모습이 달라서 이걸 이렇다 저렇다 결정할 수 없더라고요.
그래서 그냥 인정해버렸습니다.
‘나는 이렇구나!’ 하고 받아들이니까 자존감이라는 거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.
막말로 먹고 사는 생존이 급해지니까 그런 것들이 사소해보이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.
사회의 기준은 필요한 것이지만 매달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.
살다보니 경우의 수는 너무 많고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댓글을 달 정도로 현자도 아니고 해결해줄 수도 없으니까요.
자존감은 그냥 ‘나’를 찾는 단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.
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게 되는 힌트를 주는 것 같아요.
어쩌면 도덕적인 생각과 윤리관을 갖게 하는 지표도 될 수 있고요.
희우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뇌과학 책에서는 상황에 따라 뇌의 반응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자존감도 바뀐다고 합니다. 이말을 들으니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이제는 자존감을 높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.토요일 오후 진행된 자유독서에서는 두 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!
거리가 먼데도 참여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.오늘 모임의 토론은 책과는 별개로 자존감이 키워드가 되었습니다.
자존감의 유행은 사실 조금 지났다고 보는데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.
자존감이 세상에 떠오른 건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부터 인 것 같아요
누군가의 성격이나 독립심을 인정하고 ‘그런 사람’임을 알게 되면서 부터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럼 나는 뭐지? 하는 자각이 자존감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
또 인간은 너무나 다양한 상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.
이러한 감정과 저러한 이성을 동시에 띄고 있고 그게 개성이 되어 ‘나’라는 사람의 성격이 되기도 하죠
그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거고
지금은 더 세밀한 분류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.오늘 참여하신 분들도 자기 자신에 관심이 많고 개발을 하려는 의욕이 높아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.
자기 자신은 아직 개척되고 발견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.오늘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왜 사회의 기준에 흔들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
착실하게 12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20살에 대학에 가고
20대 중반이 되면 진학을 하거나 취업 전선에 들어섭니다.
지옥같은 취준을 하고 나면 ‘알고보니 더 지옥같은’ 회사 생활이 기다리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되면 결혼이나 출산, 양육이라는 단계가 있죠.
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생기고는있지만 아직은 필수라고 보는 시선들도 있는 것 같아요.
예를 들면 그 ‘필수라는 시선’이 사회의 기준 같아요.남들은 그 나이에 다 취직을 했는데 넌 뭐 해?
너는 전공 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? 왜 여기 왔어?
하는 걱정을 빙자한 참견이 해당 단계에 진입하지 못 한 사람들을 위축시킵니다.
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걸 만들어서 그 절차를 밟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걸까요.
이 단계에 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고 나도 참여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걸 벗어나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요?
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그 시간들이 쉽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때 힘든 기억을 잊어버렸는지 너무 가볍게 ‘이상하다’고 결정지어버려요.
그 말들이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위축되는 건지 모르겠어요.
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기서 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더 위축시키는 것 같아요.
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대단한 거고 난 낮으니까 그렇지 않다고 이분법적으로 보기도 해요.
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왜 그게 안 보이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걸까요.저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
그냥 이거 자체를 인정해버렸습니다.
내성적이라고 해서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고 외향적이라고 해서 소심함이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.
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에는 상황에 따라 나의 모습이 달라서 이걸 이렇다 저렇다 결정할 수 없더라고요.
그래서 그냥 인정해버렸습니다.
‘나는 이렇구나!’ 하고 받아들이니까 자존감이라는 거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.막말로 먹고 사는 생존이 급해지니까 그런 것들이 사소해보이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.
사회의 기준은 필요한 것이지만 매달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.
살다보니 경우의 수는 너무 많고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댓글을 달 정도로 현자도 아니고 해결해줄 수도 없으니까요.자존감은 그냥 ‘나’를 찾는 단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.
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게 되는 힌트를 주는 것 같아요.
어쩌면 도덕적인 생각과 윤리관을 갖게 하는 지표도 될 수 있고요.
희우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뇌과학 책에서는 상황에 따라 뇌의 반응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자존감도 바뀐다고 합니다. 이 말을 들으니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이제는 자존감을 높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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